날이 점점 더워지고 있다. 사계절이 뚜렷한 아름다운 대한민국답게
무더위가 사람을 녹여 죽이고 있다. 지난 여름 이후 잠자고 있었던 에어컨을
벌써 가동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 끔찍한 더위를 극복하게 도와주신
캐리어 박사님이 계신 방향으로 일곱번 절을 하고 해당 글을 작성하고 있다.
더위는 육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마저도 늘어지게 만든다. 몇몇 사람들은
이런 더위로 늘어진 정신을 다시 번쩍들게 하기 위해 '공포 장르'를 찾는다.
간단하게는 공포영화를 시청하거나 괴담을 읽음을 통해, 조금 더 즐기는 사람들은
폐가나 귀신 스팟을 찾아다니면서 몸에 소름이 돋고 털이 곤두서는 '공포'를 찾아다닌다.
이는 게이머들 또한 다르지 않다.
공포(Horror) 게임 장르는 인간의 기본정서인 '공포'를 즐기기 위해 등장한 게임이다. 그런데
게임을 통해서 재미나 즐거움을 찾는 게이머들이 '공포'를 느낀다는 것은 뭔가 상반되어보인다.
게이머들은 어떻게 공포라는 장르에서 유희적인 자극을 느끼게 되는 것일까?
이 이유를 알기 위해 먼저 공포라는 정서를 분석해 보도록 하자.
먼저 공포는 크게 3가지로 분류되는데, 본유적 공포, 학습된 공포, 무의식적 공포이다.
본유적 공포는 말그대로 인간이 본유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포로 타고나는 것들이다.
즉, 이 공포에 대해서는 유전자단위로 각인 되어 있기 때문에 극복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대표적으로 깜짝 놀래키기, 소리, 강한 빛의 자극이 있다. 이런 자극에 대한 반응은
생존본능과 연관되어 있어 사람들이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우리가 게임에서
예상하지 못한 점프스케어를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놀라게 되는 게 그런 이유다.
확정적으로 사람에게 공포감을 줄 수 있어 공포게임에서 자주 활용하는 공포이다만,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이 오는 만큼 남발하면 그만큼 스트레스로 다가오게 된다.
설계가 잘못된 공포게임에서 공포감보다 불쾌감이 강하게 느껴진다면, 이런 본유적 공포를
남발하여 사람에게 생리적인 불편함을 준 것이 원인일 수도 있다.
학습된 공포는 말 그대로 인간이 경험을 통해 학습하게 된 공포로, 어떤 공포를 준 자극이
특정 물체와 연결되어 조건화 될 때 공포가 학습된다고 볼 수 있다. 뱀과 거미, 해골, 좀비, 괴물 등
이 학습된 공포들가 될 수 있으며 이는 본유적 공포에서 기인하여 사물에 경계를 품게 되어
얻어지는 것들이 있을 수도 있고,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것들 또한 존재한다.
학습된 공포가 강하게 남을 경우 정신적 외상인 트라우마(TRAUMA)가 될 수도 있다. 가령 어릴적
개에게 물린 경험이 있다면 개를 볼 때 해당 경험을 떠올리며 공포감에 빠지는 것들이 그러하다.
이 학습된 공포는 사람마다, 문화마다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게임은
이 공포를 활용하기 위해서 플레이어가 어떤 상황과 경험을 겪어왔는지 알아야한다.
특히 글로벌 서비스를 하는 게임이라면 서비스권 문화인식을 알 필요가 있다.
대표적으로 문어를 예로 들 수 있는데, 두족류 혐오정서를 가지고 있는 서양권에서는 공포와 괴물의
상징으로 문어를 많이 이용하지만 한국에서는 반찬거리에 불과한 생물이기 때문에 별다른 공포감을 느끼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게임에서는 타문화권에서도 공포감을 느낄 수 있는 문화초월적인 공포를 사용하거나
해당 문화에 맞는 로컬라이징을 활용하고 있다.
추가적으로, 이 공포는 공포게임이 아니더라도 게임에서 많이 활용되는데,
플레이어에게 패널티를 주는 요소와 자주 연결된다. 죽으면 저장하기 전까지 모든 기록을 잃는 게임들을 생각해보자.
플레이어들은 게임 진행 과정이 길어지거나 캐릭터가 죽을 위기가 찾아오면 세이브를 찾고자 움직일 것이다.
죽으면 모든 것을 잃기 때문에 자신이 해온 과정을 모두 상실한다는 불안감과 공포를 느끼고
이 것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세이브를 찾게 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Dark Soul이 그 예시가 된다.
마지막은 무의식적 공포로 조금 생소할 수 있는데 이는 별도의 공포 종류라기보다 사람의 인지특성상
겪을 수 있는 공포다. 사람의 인지시간은 일반적으로 0.03초로 그 보다 빠르게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인지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 단 시야에 사물이 들어와 편도체자체는 그 장면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데
이런 이유로 분명 무언가 지나간 것 같은 불편한 기시감을 느끼거나 별다른 상황없이 공포감이 생긴다면,
이 공포가 발생되고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빠르게 지나가는 장면, 기묘한 뒤틀림 등
제대로 된 인지를 방해하면서 뇌가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으로 긴장감을 올리는 공포다.
이런 3가지 공포를 사람이 직면하게 되었을 때 사람은 생리적으로 변화를 겪는데
손에 땀이 나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입이 마르고, 몸이 떨리며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는다.
스트레스가 더욱 강해진다면, 후각, 시각, 청각 등의 감각 기능이 1.5배 예민해 지며 동공의 확대가 일어난다.
이는 한마디로 몸이 위험함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빨리 회피하고자 몸에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의식적으로 인지된 특수한 위험에 대한 회피반응을 이르키는 것이다.
따라서 공포는 단순히 두려워 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하는 것에 대한 회피 정서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공포가 유희자극이 될 수 있는 것은 이런 회피에 대한 보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게임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해당 프레임이 가상의 세계임을 알며 언제든지 탈출할 수 있음을 안다.
이 때문에 공포로 인한 생리작용을 얻으면서도 최종적으로 공포감각을 탈출하면서
몸의 이완과 쾌감을 선사받기 때문에 유희적으로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를 조금만 더 심화적으로 들어가보자. 네덜란드의 역사가이자 철학자,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유희하는 인간으로 정의한 바 있다. 인간의 본질적으로 유희를 추구하며
이를 위해 놀이를 사용한다. 이 유희는 단순히 노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창조를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드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로제 카유아(Roger Caillois)는 이 이론에 등장하는 놀이에 대해 분석하면서
놀이하는 원동력과 놀이의 4대 요소를 발표하였다. 이 중, 4대 요소를 공포의 유희적 재미와 연결해 보자.
먼저 아곤(Agon)은 분쟁, 경기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로 경쟁이라고 불리는 요소이다.
게임 속에서 경쟁을 통해 승리함으로써 얻는 쾌감과 우월감에 연결되는 요소로
플레이어가 대립자와 경쟁하려는 의지이기도 하다.
공포 게임장르에서는 플레이어간의 대립보다는 주인공 캐릭터와 대립구도를 갖는 괴물, 귀신 같은
캐릭터과의 대립 및 사투를 통해 드러나며 이런 분투를 통해 아곤과 결합된 유희적 공포를 체험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게임에서 대립자들에게 플레이어의 캐릭터를 공격하는 행동패턴이나 일종의 인공지능을
부여하여 플레이어를 게임오버라는 위협적인 상황에 놓이게 만들어 플레이어가 해당 상황을 겪지 않기 위해
몰입하고 즐기게 만들며 일종의 스릴을 부여하도록 활용된다.
아곤이 플레이어의 대립의지를 불태우는 것이라면
아레아(Alea)는 플레이어를 혼돈의 구렁텅이로 집어던지는 것이다.
주사위 놀이라는 뜻으로 놀이자의 의지를 배제한 채 모든 것을 운에 맡겨 버림을 말한다.
이는 플레이어가 통제할 수 없는 반복되는 무서운 사건들의 경험에 의해 플레이어에게
공포를 기대하게 만들며 그 기대는 플레이어가 스릴을 느끼는 유희적 자극이 된다.
가령 유령이 존재하는 저택을 탐사하는 게임을 한다고 해보자.
유령은 플레이어가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놀래키며 플레이어에게 공포감을 선사해준다.
플레이어는 그 예측할 수 없는 특성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되며 이것이 재미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예측가능하게 되는 것은 재미를 떨어뜨리게 되는데,
이 때문에 특정구간에서 튀어나온다는 사실을 플레이어가 알게되면
이런 아레아적 요소가 사라지기 때문에 공포게임에 대한 재미가 반감되게 되는 것이다.
아곤과 아레아가 일종의 게임룰안에서 이루어지는 공포라면, 미미크리(Mimicry)는
플레이어의 의지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들이다. 흉내, 모방, 의태를 뜻하는 미미크리는
얼마나 잘 모방했는지 표현했는지를 통해 게임에 집중하게 되는 것으로
즉 게임 속에 대한 몰입감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재미, 즐거움, 집중과 도전감으로
게임의 미미크리적 가상성에 재미를 갖고 도전하는 동안 호기심이 고양되고
흥미를 갖게 되는 구조를 말해 줄 수 있다.
반대로 플레이어의 몰입도가 떨어지게 될수록
공포의 강도가 하락하고 즐거움 감소하며 게임 자체에 흥미를 잃을 수 있다.
우리가 공포게임을 플레이하는데 갑자기 뜬금없이 퍼즐들을 계속 제공하여
플레이어가 공포가 아닌 퍼즐에 집중하게 된다면 이런 미미크리적 요소가 깨지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공포게임에서의 퍼즐은 분위기의 전환으로 사용될 지언정 난발하여 몰입감을 해쳐서는 안된다.
미미크리는 게임에 플레이어가 얼마나 몰입하느냐에 달려있기에,
마치 그곳에 있는 것 처럼 느껴지게 해주는 요소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대표적으로 그래픽과 사운드가 있다. 고퀄리티의 배경맵에서 귀신을 마주했는데
폴리곤 귀신이라면 몰입도가 박살나 오히려 헛웃음이 나오는 것처럼 그래픽과 사운드가
공포의 테마를 잘 받쳐줘야 한다.
물론 이 말은 공포게임은 고퀄리티여야 집중된다는 말은 아니다.
좋을 수록 현실감 제공을 통해 집중을 할 수 있는 요소가 되기도 하지만
플레이어가 세계관에 몰입할 수 있도록 받쳐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미미크리가 게임밖 플레이어의 의지를 반영한다면 일링크스(Ilinx)는 소용돌이를 뜻하는 말로
게임밖에서 그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놀이 요소다.
본능적인 재미에 가까운 것으로 롤러코스터를 타고 느끼는 스릴과 쾌감같은
진정기관을 자극하는 현기증이나 최종적으로 공포상황에서 탈출했을 때 오는
안도감과 쾌락에서 오는 유희적 감각을 모두 말한다.
특히나 공포게임에서는 후자의 방향이 많이 쓰이며 극복할 수 있는 공포에서 오는 즐거움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런 공포로 유희를 얻으려는 기저 심리는 감각추구수준이라는 강렬하고 감각적인 경험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욕구에서 비롯 된다는 연구 사례에서 알 수 있는데, 마빈 주커만(Marvin Zuckerman)의
감각추구수준 척도의 스릴과 모험추구 요인등을 보면 위험한 행동과 약물과도 같은
강한 자극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공포라는 상황에 스스로 들어가 자극적인 경험을 받고 해결해 쾌락을 얻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이 심해지면 중독현상이 될 수 있으니 항상 유의해야 한다.
이 4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정리해보자면 게임에서 얻는 유희적 공포는
미미크리의 가상성에 몰입하고 일링크스의 감각에 몸을 맡기며
아곤의 경쟁의지와 아레아의 기대심리에서 기인하는 즐거운 공포라고 할 수 있다.
놀이라는 제약된 틀안에서 가상의 상황과 모의성을 인정하고 해당 역할에 몰입할수록 강해지는
공포를 기반으로 인간의 감각을 통한 원초적 자극에서 오는 즐거움과 대립자들과의 경쟁에서 오는 스릴과
플레이어의 경험에 의한 기대심리적 공포가 융합되면서 공포는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공포게임 장르와 사람들이 공포를 통해 왜 재미를 느끼는가에 대해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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